주차 공간 넓힌 규정 신설했지만 소급적용 안 돼 '무용지물'
【서울=뉴시스】박성환 기자 = "새차 문짝에 또 흠집이 찍힐까봐 주차하기가 겁이 납니다"
서울 영등포구에 사는 회사원 신승호(28)씨는 자신의 차량을 주차해 두기가 불안하다. 애지중지 하던 새 차 곳곳에 못에 콕 찍힌 것처럼 움푹 팬 흠집들이 많아진 탓이다.
이런 일이 잦다보니 신씨는 자신의 차량을 주차하는데 적지 않은 시간을 소요한다. 한 쪽이 벽면이거나 기둥으로 된 공간을 찾아 주차장을 빙빙 도는 불편은 예삿일이다.
또 주차돼 있는 옆 차의 실내를 확인한 뒤 어린 아이가 탄 것으로 보이면 다른 곳으로 차를 옮기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는다.
신씨는 "두 달 밖에 안 된 새 차에 흠집들을 볼 때마다 속상하고 화가 난다"며 "흠집을 볼 때마다 매번 경찰에 신고를 할 수도 없고 사소해 보일 수 있지만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다"고 토로했다.
결국 신씨는 스펀지로 만든 '도어 가드'는 물론이고 주차된 차량을 24시간 사방 감시할 수 있는 '차량용 블랙박스'까지 설치했다.
주차때 차 문을 열면서 옆 차에 흠집을 내는 이른바 '문콕 테러'. 운전자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경험이 있다. 인터넷 자동차 관련 커뮤니티 사이트에는 문콕 테러를 당한 사실을 알리는 사진과 글이 넘쳐난다.
대부분 부주의로 인해 발생하지만 문콕 테러를 실제 당한 운전자에게는 여간 불쾌한 경험이 아닐 수 없다. 또 흠집이 작더라도 원상 복구하는데 적게는 5만원에서 많게는 10만원 이상 적지 않는 수리비도 든다.
운전자들은 문콕 테러를 당하지 않기 위해서 갖가지 대안을 짜내고 있다. 스펀지나 플라스틱 등으로 제작된 도어 가드를 붙이기도 하고, 작은 충격에도 실시간 감시가 가능한 '차량용 블랙박스'까지 설치하기도 한다.
'문콕 테러'가 이 처럼 운전자들의 골칫거리가 된 이유는 무엇일까. 1990년 시행된 주차장법에는 주차공간의 규격은 너비 2.3m, 길이 5m 이상으로 명시돼 있다. 하지만 규정이 그대로 유지되는 동안 너비와 비슷한 크기의 대형차들이 꾸준히 증가했다.
주차공간에 대한 민원이 늘어나자 국토교통부는 지난 2012년 7월 주차대수가 50대를 넘는 주차장의 경우 너비 2.5m의 확장형 주차공간을 30% 이상 설치하도록 '주차장법 시행규칙'을 신설했다.
해당 시행규칙은 그러나 이후 짓는 주차장에만 적용될 뿐, 기존 주차장은 소급적용이 되지 않아 운전자들의 불만이 적지 않다. 그나마 새로 짓는 아파트나 대형 건물들은 신설된 규정에 맞게 주차 공간을 넓히고 있지만 운전자들은 여전히 부족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따라서 기존 건물에 대한 소급적용도 추진하되 우선 신축 건물에 적용되는 '확장형 주차공간 30% 이상 설치" 규정을 더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회사원 김정국(35)씨는 "옆에 주차한 차량에 대한 배려가 없는 운전자들도 문제지만 가장 큰 문제는 비좁은 주차공간"이라며 "대형 차량이 많이 늘어난 만큼 현실에 맞게 주차 공간을 넓혀야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상황이 이런데도 과거에 지어진 일부 대형마트와 아파트의 경우는 주차공간 크기가 아예 예전 규정조차도 지키지 않은 곳이 수두룩한 것으로 드러났다.
관할 구청에서 준공검사때 주차공간에 대해서는 전혀 점검을 하지않았다는 이야기다.
실제 서울 영등포구의 대형마트와 일부 아파트의 주차 공간 크기를 확인한 결과 대부분 예전 규정해도 미치지 못했다.
A대형마트의 주차 공간은 너비 2.18m, 길이 4.78m, B백화점은 너비 2.22m, 길이 4.8m였다. 아파트는 이보다 더 비좁았다. 지은 지 20년이 넘은 C아파트의 경우에는 너비가 2.1m에 불과했다. 이런 곳에서는 민원이 끊이지 않고 있다.
C아파트 경비원 최모(59)씨는 "지은 지 20년이 넘은 아파트라 주차공간이 턱 없이 부족하고 비좁다"며 "아침마다 이웃끼리 얼굴을 붉히고, 민원도 자주 발생해서 난감할 때가 많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현실에 맞는 주차 면적을 늘리는 제도적 보안 장치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최근희 서울시립대 도시행정학과 교수는 "최근에 차량들이 대형화되는 것에 비해 주차 공간이 좁은 게 가장 큰 문제"라며 "대부분의 운전자들이 문콕 테러 등을 경험하고, 불편을 느끼는 만큼 주차공간을 넓히는 제도적 보안 장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최 교수는 이어 "넓어진 주차 규정을 소급적용하려면 비용과 물리적인 문제 등이 발생하는데 일정기간 유예기간을 두고 정부에서는 주차장 공사비를 지원하거나 세제혜택 등 일정 정도의 지원책을 마련하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